해님 그리고 달님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해님 달님'의 소름 돋는 디테일과 숨은 의미
여러분은 어릴 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던 옛날이야기들을 기억하시나요? 수많은 전래동화 중에서도 우리의 손에 가장 땀을 쥐게 했던 최고의 스릴러를 꼽으라면, 단연 '해님 달님'일 것입니다.
어릴 때는 그저 호랑이가 무섭고 남매가 불쌍하게만 느껴졌지만,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본 '해님 달님'은 꽤 치밀한 심리전과 서스펜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훌륭한 문학 작품입니다. 오늘은 알면 알수록 더 흥미로운 '해님 달님'의 깊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열두 고개의 공포 :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야기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깊은 산골에서 시작됩니다. 홀로 삯바느질과 품팔이로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는 잔칫집에서 일을 돕고 품삯으로 받은 떡을 머리에 인 채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험하고 어두운 열두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 고개를 넘을 때, 집채만 한 호랑이가 길을 막아섭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는 벌벌 떨며 떡을 던져주고 위기를 모면하지만, 이 교활한 호랑이는 다음 고개에서 또 나타납니다. 떡을 다 빼앗긴 어머니에게 호랑이는 저고리를, 그다음엔 치마를, 결국에는 팔과 다리까지 요구하는 잔혹함을 보입니다. 결국 어머니를 통째로 삼킨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주워 입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오두막으로 향합니다. (이 부분은 호랑이의 멈출 줄 모르는 탐욕과 가난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2. 문풍지 너머의 숨 막히는 심리전
오두막에서는 어린 남매가 배를 주리며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얘들아, 엄마 왔다. 어서 문 열어라."
하지만 영특했던 아이들은 섣불리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문풍지를 흔드는 찬 바람 때문인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기괴하고 거칠었기 때문이죠.
"우리 엄마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고운데요? 목소리가 이상해요." "찬 바람을 오래 맞아서 고뿔(감기)에 걸려 그렇단다."
아이들의 의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손을 보여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호랑이는 털이 숭숭 난 앞발을 들이밀었지만, 방앗간에서 하얀 밀가루를 묻혀와 "일을 많이 해서 손이 부르터서 그렇다"며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합니다. 결국 문틈으로 호랑이의 꼬리를 발견한 남매는 기지를 발휘해 뒷간(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빠져나와 마당의 커다란 나무 위로 도망칩니다.
3. 우물에 비친 그림자, 그리고 참기름과 도끼
나무 위에서 숨죽이고 있던 남매. 호랑이는 아이들을 찾다 우물에 비친 남매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우물 속으로 들어가려다 나무 위를 올려다본 호랑이와 남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은 이 이야기의 백미입니다.
"너희들 어떻게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갔느냐?" 오빠는 호랑이를 골탕 먹이기 위해 "손에 참기름을 듬뿍 바르고 올라왔지!"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미련한 호랑이는 부엌에서 참기름을 찾아 바르고 나무를 오르려다 계속 미끄러지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죠. 하지만 이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순진한 여동생이 그만 진실을 말해버리고 맙니다. "바보, 도끼로 나무를 콩콩 찍으며 올라오면 될 것을!"
4. 하늘의 심판 : 동아줄과 붉은 수수밭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으며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 호랑이. 이제 남매에게 남은 희망은 하늘뿐이었습니다. 남매는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읍니다. "하늘님, 저희를 살리시려거든 튼튼한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굵고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왔고, 남매는 무사히 구름 위로 올라갑니다. 이를 본 호랑이도 똑같이 기도했지만, 평생 악행을 일삼은 호랑이에게 하늘이 내린 것은 '썩은 동아줄'이었습니다. 줄을 타고 오르던 호랑이는 결국 줄이 끊어지며 날카로운 수수밭으로 추락해 최후를 맞이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수수깡이 붉은 점박이 무늬를 띄는 이유를 호랑이가 떨어지며 흘린 피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자연 현상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조상들의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5. 해와 달이 된 남매, 그 속에 담긴 따뜻한 배려
하늘로 올라간 남매는 하늘의 신령이 되어 각각 해와 달이 됩니다. 원래는 오빠가 해님, 여동생이 달님이 되기로 했었죠. 하지만 겁이 많던 어린 여동생이 캄캄한 밤하늘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자, 다정한 오빠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 줍니다.
결국 밤을 무서워하던 여동생은 낮을 비추는 해님이 되었고, 오빠는 밤을 지키는 달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이유는, 부끄러움이 많은 여동생이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때문이라는 귀여운 설정도 숨어있습니다.
'해님 달님'은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섭니다. 무서운 호랑이(자연재해, 가난, 혹은 시련) 앞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짜낸 연약한 남매의 모습은, 척박한 삶을 이겨내려 했던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오늘 밤, 어두운 밤하늘을 조용히 비추는 달님을 보며, 동생을 위해 기꺼이 밤하늘을 택했던 오빠의 따뜻한 마음과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의 향수에 젖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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