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돌이 ( 어르신들이 절대 부르지 말라고 했던 이름?)
여러분은 어릴 적 시골에 가면 왠지 모르게 무서웠던 장소가 있으셨나요?
오늘은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직접 겪었던 기이하고 오싹한 일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절대 부르지 말라고 했던 이름, '감돌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감나무 아래 서 있던 아이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저는 두 달 정도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습니다. 할머니 집 뒷마당에는 아주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제가 그 나무 근처에 가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셨습니다.
"얘야, 뒷마당 감나무 밑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특히 해가 지면 절대로 가면 안 된다."
어린 저는 그저 벌레가 많거나 위험해서 그러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혼자 마당에서 제기 차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담장 너머, 감나무 그늘 아래 처음 보는 또래 남자아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말없이 저만 바라보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심심했던 저는 반가운 마음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너 누구야? 이 마을 살아?"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뭐야?"
잠시 침묵하던 아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감돌이."
그때는 그 이름이 왜 그렇게 낯설고 서늘하게 들렸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2. 해 질 무렵마다 찾아오는 아이
그날 이후 감돌이는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뒷마당 담장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신기한 점이 있었습니다.
항상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에만 서 있었고,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
제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짧게 한두 마디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또래 친구 하나 없던 시골에서 저는 금세 감돌이와 친해졌습니다.
딱지치기를 하고 흙장난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감돌이는 늘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이 되면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가야 해."
그리고는 언제나 감나무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흘렀습니다.
3. 할머니의 비명
그날은 유난히 먹구름이 잔뜩 끼고 굵은 소나기가 퍼붓던 저녁이었습니다.
방 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는데, 문득 툇마루 쪽을 바라보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감돌이가 비를 맞은 채 마당을 가로질러 툇마루 바로 앞까지 와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담장 밑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향해 천천히 손짓했습니다.
"...나랑 저기 가서 놀자."
평소와 달리 감돌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저 저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만이 이상할 만큼 차갑고 섬뜩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툇마루로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녁상을 들고 오시던 할머니가 저와 툇마루 앞을 번갈아 보시더니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그대로 떨어뜨리셨습니다.
"악! 감돌아! 당장 물러가!"
할머니는 다급하게 소금을 한 움큼 집어 마당으로 뿌리셨고, 마루 밑에 있던 몽둥이를 집어 들고 뛰어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눈에는 분명 감돌이가 서 있었는데, 할머니가 휘두르는 몽둥이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 갈랐습니다.
감돌이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이 흐려지더니 감나무 뒤편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습니다.
4. 40년 전 사라진 아이
정신을 차린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저를 꼭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날 밤 마을 이장님과 무속인 한 분이 집으로 찾아오셨고, 저는 그곳에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40여 년 전.
이 집에는 매우 가난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린아이가 감을 따기 위해 뒷마당 감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족조차 제대로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던 아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감나무 집 아이'라는 뜻으로 감돌이라고 불렀고, 아이는 감나무 아래에 묻혔다고 했습니다.
무속인은 한참 동안 저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네."
잠시 침묵하던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네 이름을 알고, 네가 그 아이 이름을 불러줬잖아. 존재를 서로 인정하는 순간, 혼이 따라갈 수도 있었어."
그 말이 끝나자 방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습니다.
맺음말
그날 밤, 할머니는 무속인과 함께 아이의 넋을 달래는 작은 제를 올리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뒷마당의 오래된 감나무도 베어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다시는 감돌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오래된 시골길을 걷다가 커다란 감나무를 마주하거나, 해 질 무렵 짙은 그늘을 바라보면 문득 그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나랑 저기 가서 놀자."
물론 이 이야기를 믿을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오래된 시골 마을에서 해 질 무렵, 혼자 서 있는 아이가 다가와 이름을 묻거나 함께 놀자고 한다면…
적어도 저는, 절대 쉽게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